[대리 일기 : 0] 다시 거리에 서다.
2008년 한 장애인단체에 입사해서 시작된 시민사회에서의 생활을 지난해 8월 말일을 기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친구들 몇 명과 주식회사를 만들고, 배짱 좋게 뭔가 일을 꾸며 보았는데...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2023년 4월 말일 함께 일하는 동료의 급여를 챙기고 나니... 회사도 저도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운전 자금을 준비하지 않고, 기존에 내 것이라 믿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렇게 저렇게 엮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계획은 산산이 부서져 흔적도 찾지 못할 정도입니다.
기대했던 건 다 미끄러지고, 생각했던 건 다 제멋 대로 날뛰더니 제 곁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불혹의 나이, 이 나이를 처먹고도 세상살이가 참 어설프구나 자책과 반성을 하는 것도 잠시, 지금이라도 다시 역량을 보존하고, 현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할 말이 많지만, 이 부분은 '창업일기'로 따로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좌우당간 일단 현실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할 여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
2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언제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반을 보전하고, 그간 실패의 경과를 기록해 둔다.
둘째, 어떤 풍파에도 6개월은 견딜 수 있는 시드머니를 최대한 빨리 확보한다.
시드머니를 만들자고 생각을 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사실, 특별한 기술을 가지지도 못한 40대 남자가 지금이라도 시드머니를 만들자고 생각하니, 좋은 생각이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평택 고덕 삼성전자 반도체 건설 현장이 '원화 채굴의 성지'라는 언론 보도를 본 일이 있어서 숙식제공에 적어도 하루 1.5 공수를 찍어주는 일자리를 알아보려 검색창에 '숙식 노가다'를 검색해 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본 키워드는 '슬로우 다운'입니다.
삼성의 '슬로우 다운'으로 인해 평택 고덕 노가다판이 아작이 나고 있고, 17만 원까지 지급되던 일당은 13만 원까지 떨어지고 하루 1 공수를 채우는 것이 고작이며, 그마저도 주 5일의 일 밖에 없다는 암울한 이야기.
'원화 채굴'을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광산을 찾아 떠나고 있어 평택 경제가 휘청인다고도 하고, 고덕에서 버티는 사람들은 대리운전, 배달, 택배 상하차 알바 등 조금이라도 더 '돈'을 캐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그래. 원양어선! 상남자라면 역시 넓은 바다를 경험해 봐야...
원양어선은 해기사 등, 자격증이 있어야 승선이 가능하고, 연안 어선은 돈도 안 되는데... 인생 조진다는 경험담들이 넘칩니다.
국가공인 기술이라고는 '운전'밖에 없는 시점에서 원양 어선을 제가 까는 것으로 작은 자존심을 지켜봅니다.
일일 최대 23만 원의 수입이 가능하다는 쿠팡 헬퍼로 등록도 해 놓으면서 23만 원을 벌기 위해 24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 버렸습니다.
역시, 몸으로 먹고사는 게 쉬운 게 아닌 겁니다.
이전부터 하던 도둑질이라도 하는 게 좋은가 생각해 봤지만, 이미 떠나온 세계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 세계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제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덜컥 회사를 만들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제 창업의 시즌1은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지만, 시즌2에서의 흥행을 위해서는 적어도 직진할 수 있는 여건은 유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하루 20만 원 이상의 수익이 가능하면서 남는 시간에 창업 시즌2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억대 연봉자들께 일당 20만 원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주 6일을 기준으로 1,200,000원이며, 4주에 2일을 더해 26일 기준으로 보면 1개월에 5,200,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물론, 일용직이란 시간을 갈아 돈으로 바꾸는 직역입니다.
즉, 시간을 갈아 넣지 않으면 위에 계산된 일당은 그저 숫자일 뿐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지요.
해서 일단 제 선택은 '대리운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퀘스트를 형성해서 연말까지 최소 3,000만 원 ~ 최대 5,000만 원의 시드머니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다시 거리에 서다.
'다시'인 이유는 제가 이미 2010년대부터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3년여 정도 필드를 떠나 있었지만, 이제 다시 그 달빛 비치는 거리에 서서 '콜'을 쪼개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4월 30일 근 3년 만의 첫 콜을 수행했습니다.
- 왜 대리운전인가?
불경기로 '원화 채굴'이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가진 거라고는 '1종보통운전면허' 밖에 없는 주제에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를 않습니다.
요즘 대리판도 많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해 봤던 일이고... 결정적으로 저는 '야행성'인 데다가 '운전'도 좋아하고 잘합니다.
지난 보름 정도 대리운전을 뛰며 테스트한 결과 저녁 7-8시 사이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2-3시 사이 퇴근을 하면서 평균 7 콜을 수행하고, 14-5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수행하는 콜 수를 조금 늘린다면 목표치에 근사해서 수입을 만들고 오후에 추가로 수행 가능한 퀘스트를 찾으면 목표하는 시드머니의 최대치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결정의 방향타를 조정합니다.
본격 적인 '대리 일기'는 이제 한 장씩 채워 나갈 계획입니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훗날 제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거나 새로운 의욕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함입니다.
또한 누군가 나와 같은 상황에 '대리 운전'을 생각한다면 참고로 할 만한 매뉴얼을 제공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콜, 손님, 때로는 달빛 아래 떠올렸던 단상들을 조금씩, 너무 무겁지 않게... 현장의 이야기를 섞어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물론 '대리운전의 왕'은 제 목표가 아니기에 시즌1을 정리한 후 새롭게 정비하는 사업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도 '창업 일기'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어제 : 오늘 : 내일 밤거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Have a Good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