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신 교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이번 생에 펼치지 못한 꿈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평안 하소서.
반복되는 악성 민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가해자로 알려진 학부모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동시에 소위 '학부모 갑질'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더불어 온.오프라인에서 신상이 공개된 학부모들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다. 특정한 이슈에 반응하는 대중의 태도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일종의 조건 반사와도 같은 것이다.
지난 2013년 모 유제품 제조업체의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강매)' 의혹과 그 과정에서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욕설과 폭언이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해당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모 항공사에서 '땅콩 회항' 사건으로 회자되는 갑질 사건이 있었고, 해당 사건의 당사자는 검찰 수사를 받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복기해 보면, 유사한 사건, 사회적 논란과 공분 그리고 '갑질'을 막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는 매년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잊을 만 하면 발생할 것이다.
갑질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거나, 열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을 의미 하는데, 이렇게만 보면 '극단적 선택'까지 해야 할 정도의 심각성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갑질을 개인적으로 정의해 본다면 갑질은 '관계에서 형성된 위계에 의해 일방에서 행해지는 지속적인 유.무형의 폭력'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렇게 정의하는 이유는 사전적 의미의 갑질은 '똥 밟았다' 생각하며 지나갈 수도 있을 정도의 문제로 보이는 반면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갑질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관계성'을 전제로 하기에 구분이 필요하다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지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 드러난 일들도 있지만, 소위 '갑질'이 발생하는 매커니즘은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어서 곪아 터져야 할 순서를 기다리는 '갑질'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오늘은 '학부모 갑질'이 문제가 되었지만, 내일은 '교사 갑질' , '학생 갑질' 사건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본래 성품이 되먹지 못한 사람들일까? 이번에 여론의 제단위에 던져진 학부모들만 유독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이들만 정죄하면 '교권'이 바로 서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갑질'이라는 폭력의 순환을 끊어 내지 못할 거다.
'갑질의 본질'은 '위계에서 학습된 우월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납세자라는 우월감'에서 '악성 민원인'이 태어 난다. '고객(소비자)이라는 우월감'에서 '진상 고객'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악성 민원인'이나 '진상 고객'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반복적으로 학습된 '우월감'이 조금씩 통제력의 한계를 갉아 먹다가 어느 순간 통제력의 범위를 넘어 완성되는 것이다.
우월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한다.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우월감에 근거한 성취감을 얻기 위해 더욱 격해지고, 극단적인 수단을 활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지기도 한다. 위계적 구조에서 조금이라도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 '갑질'은 시작된다.
개인은 하나의 특정한 모습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하다. 판매자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우월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진상 고객에게 호되게 당한 자영업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갑질을 하는 진상 고객일 수 있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도 삼겹살집에 가면 어떤 진상을 부리는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문제가 '교권'이라는 '권리 보장'의 문제로 논의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입장이다. '악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통제하지 못함이 문제일 수 있으나 '민원' 그 자체에 대해서는 또 다른 판단을 해야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리'의 측면에서 이런 저런 규제를 만들어 내는 것 보다 '민원'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계에 의한 전형적인 갑질을 볼 수 있는 곳은 '직장'이다. 직장내 갑질, 괴롭힘, 따돌림 등의 문제는 이미 수도 없이 불거졌다. 그 때 마다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당사자들은 여론의 제단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다양한 규제가 도입 되었어도 여전히 고통 받는 직장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갑질의 문제를 '권리'의 측면에서 다루게 되면 '침해된 권리에 대한 구제'가 해결책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를 관리하거나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다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게 된다는 말이다. 즉, 누구를 조져야 하나?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데 다음에 조져질 사람이 나나 당신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이미 갑질의 사례로 문제가 된 사람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문제가 될 사람들 중 누구도 그 당시에 자신의 행위가 '갑질'로서 누군가에게 폭력이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거다. 그들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기 전 까지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 말할 근거는 찾기 어려울 거다.
갑질 순환의 매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개인으로서는 '역지사지'의 소양을 체화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갈등을 관리하고 중재하기 위한 시스템을 체계화 해야 한다. 누군가 그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함에도 그를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위계에 의해 하층위의 개인에 '밀어 내기'로 일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관성을 먼저 짚어야 하지 않을까?
마녀를 처단하고, 단편적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처방을 멈춰야 할 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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