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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일기 : 28] 드라이버의 평행세계 (대리의 세계와 라이더의 세계)

긴비의 부업일기

by Ginbee's Wonderland 2024. 7. 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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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리 일변도의 순애보에서 새벽배송을 포괄한 자유연애를 즐기고 있는 Ginbee입니다.

 

그나저나 덥네요. 매일 매일 몸을 일으켜 밤거리로, 새벽거리로 나서는 게 힘든 시절입니다. 나태해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개인적인 일들도 발생해서는 이번 달은 밤거리 보다는 주로 새벽거리에서 누군가의 쇼핑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활동으로 현금 채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딱히 대리운전을 그만두려 하는 건 아닌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새벽배송에 조금 더 익숙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고, 개인적인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대리운전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뭐... 다음주 부터는 슬슬 대리운전에도 또 힘을 좀 내서 현금 채굴에 조금 더 힘을 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보게 되는 세계와 새벽배송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보게 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자판을 잡았습니다.

 

1. 평행세계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그런 평행세계

 

대리도 운전이고, 새벽배송도 운전입니다.

 

공통된 시간대에 거리를 헤메는 데, 대리운전은 꿀콜을 찾아 헤멘다면 새벽배송은 배송처를 찾아 골목 골목을 누벼야 하죠. 풍경은 비슷한데, 느낌은 많이 다릅니다. 불확실성의 위치 정보도 상당히 다른 느낌인데, 이게 또 상당히 흥미 진진합니다.

 

보통 오후 7시 정도에 대리운전을 시작해서 12시 30분 정도에 귀가를 하고, 1시 정도에 지역 센터에서 물량을 배정받아 새벽 배송을 하게 되는데... 마치 평행세계를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같은 풍경 속에서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신선한 경험을 해서 이 이야기를 좀 남겨 놓고 싶습니다.

 

2. 대리 VS 라이더

 

'대리'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멸칭으로 쓰이기도 하죠. 누군가에게는 루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동정의 대상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상종 못할  부류의 인간들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라이더'라는 부류의 배달일을 하는 사람들의 멸칭은 별도로 '딸배'라는 단어가 존재하죠. 물론 '딸배'라는 멸칭은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되서 배달을 하는 사람들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는 듯 합니다.

 

지금 제가 물량을 받는 센터도 전체 라이더 중 절반 정도는 자가용을 이용해 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 개인 차량을 이용해 배송을 하죠. 결국 대리운전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차량을 운전하고, 새벽배송을 할 때는 제 차량을 운전합니다.

 

제가 이 일을 해 보기 전에는 소위 '물류'라고 부르는 범위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는데 물류의 한 구석에서 배송을 해 보니 전에는 몰랐던 세계의 이면이 조금 보인 듯 합니다. 이런 게 또 다양한 경험을 가지는 묘미라면 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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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운전은 운전입니다. 어떤 일을 하건 운전석에 앉아 페달을 밟고 핸들을 돌립니다. 그런데 그 형태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더라고요. 대리운전을 할 때는 지킬 수 있는 모든 규정을 지키며 운전을 하는 게 중요했는데, 새벽배송을 할 때는 무시할 수 있거나 그런 상황이 되는 모든 상황에서 규정 보다는 효율성을 따져 운전을 하게 됩니다.

 

몇달 전 로켓배송을 하던 배송기사 한 분이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고, 저 처럼 새벽배송을 하시던 40대 여성분이 갑작스런 폭우에 늘어난 급류에 휩쓸려 돌아가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로켓배송을 하시던 배송기사께서 배송 차량에서 의식을 잃어 생명의 위험했던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제주도 기사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배송을 해 보니 '마감 시간'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저의 경우 보통 그날 배정받은 물량을 당일 오전 7시까지 전부 배송해야 하는데 2시30분 정도 배송을 시작한다면 4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 겁니다. 다만 매일 매일 지역이나 물량이 변동되기 때문에 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주력으로 맡게 되는 지역이라는 것이 있고, 평균적으로 배정되는 물량이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만,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새벽배송은 오전7시까지 배송이 마감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고, 저 역시 될 수 있다면 그 시간을 맞추려 노력을 하지만 관리자가 시간 단위로 배송 상태를 체크하거나 배송 속도를 올리라고 메시지가 온다던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는데, 시간을 조금 넘겼다고 불이익을 주거나 물량을 빼는 일 같은 것은 없었는데, 쿠팡이 이런 부분에서 조금 비정하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 쪽에서 사건 사고가 많은 이유가 있기는 있겠죠.

 

새벽배송에서 운전이 조금 거칠어지거나 무법화 하는 건 아무래도 저 시간제한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측면이 큰것 같기는 합니다. 익숙한 지역에서는 카메라가 없는 지역도 알고 있을 것이고, 역주행을 해서 이동 거리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꼼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마감 시간을 맞추려 하게 되는 거죠. 이게 좋다던가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되는 이유를 말하고 싶은 거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당일 배송의 편리함이 유지되는 배경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대리운전은 조금 다릅니다. 시간 제한이 있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교통 법규를 지키는 게 이득이죠.

 

대리운전이 하기 싫으면 안할 수 있는 자유직 같은 느낌이라면, 새벽 배송은 하기로 한 이상 해내야 하는 일용직 같은 느낌입니다.

 

3. 대리의 시선과 라이더의 시선

 

대리운전을 할 때는 주로 큰 도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새벽배송을 할 때는 큰 도로 보다는 골목길을 바라보죠. 그에 따라 거리에서 보이는 느낌도 많이 다릅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는 하는데, 새벽배송을 할 때는 그 보다는 조금 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 발견하고 생각하게 되고는 합니다.

 

새벽배송을 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 중 하나는 '쿠팡'의 힘입니다. 쿠팡이 이커머스 부문에서 1위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개인들이 그것을 체감하게 되는 경우는 많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새벽 시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는 쿠팡의 배송 차량들과 배송처에서 보게되는 쿠팡에서 배송한 물품들을 보게 되면 그 규모와 물량에 놀라게 됩니다. 또, 물량을 배정받으면서 지역들을 보게 되면 해당 지역 거주자들의 연령이나 구조 등도 대충 볼 수 있게 되죠. 물론 골목길을 헤메면서는 지역의 개발 정도, 주민들의 경제적 여건 등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또 저는 주로 서울의 서남권에서 배송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의 물건도 종종 배송하게 되고는 합니다. 한국 사회의 국제화와 더불어 얼마나 우리의 생활권 깊숙한 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대리운전을 할 때와 비교해 공통적인 느낌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주거 문화인가 하는 것 정도입니다. '전통시장 VS 대형마트'와 같은 느낌인데, 대형마트가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듯이 대리운전을 할 때나 배송을 할 때도 아파트 단지가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이런 시선의 차이를 새롭게 알게 되고, 느끼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4.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세상의 이면

 

서울 시내를 보자면 빠른 지역은 새벽3시가 되면 버스 회사들에서 첫 차가 시동을 걸고 운행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4시 가 되면 거리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시작하고, 새벽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청소 노동자들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이 출근에 나서죠.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타인의 차량을 운전하고 있고, 누군가의 물품을 문 앞에 가져다 주기 위해 건물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침에 깔끔하게 청소된 거리만을 본다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조들을 다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겁니다.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좋겠네요. 하지만 당일 주문한 물품을 당일 문앞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삶, 밤새 술을 마시고도 자신의 차를 가지고 집에 갈 수 있는 삶. 깨끗하게 청소된 사무실에 앉을 수 있는 삶. 이런 삶의 모습들이 그냥 유지될 수는 없을 겁니다.

 

서로가 다 연결되어 굴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사회겠죠. 연결고리들이 이면에 가려져 있어서 실제로 이 구조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이 이면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새벽 배송을 하면서 제가 보고 있는 이면 너머의 구조들은 사실 너무나 작은 겁니다. 그래도 이 작은 구조들을 보면서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은 현금 채굴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새벽배송의 실무에서 느낀 점들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마도 곧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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