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가볍게 '비선호지역 체험'을 했기에 그 내용을 기록해 두려고 했는데, 재미 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고 언급해야 할 키워드도 많습니다.
어제는 예정에 없던 만남이 생겨서, 하루 쉬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까지 모자란 잠을 보충했네요.
어제 하루치 수입을 포기했기 때문에 오늘은 콜을 쪼아야 합니다. 오늘도 또, 이런 저런 손님들을 만나겠죠. 그래서 오늘은 그간 거리에서 만났던 손님들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 대리 운전을 이용하는지... 우리들 대리 운전 기사들에게 어떤 고객들이 있는지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대리 운전 기사들의 고객은 누구인가?
'대리 운전'을 음주 후 안전 귀가를 위해서만 이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돈만 내면 특정한 시간과 구간 동안 대리 운전 기사들에게 운전을 대행시킬 수 있죠. 콜을 잡고 보니, 쏘카였던 적도 있습니다. 택시비 보다는 쏘카 대여비하고, 대리비가 더 싸다는 게 손님의 계산이었죠.
실제로 대리 운전이 필요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음주 후 귀가를 하거나 이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술을 마신 사람들만 대리운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대리 운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도 분화되고, 확장되고 있죠.
① 음주 후 귀가, 회사 복귀 등 이동을 하는 사람들
대리 운전을 수행할 때, 가장 많은 비중으로 만나게 될 고객들입니다. 이 유형의 고객들은 24시간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대리 운전 일을 마치고, 귀가 중에 콜이 들어와 잡고 보니 밤새 대리운전을 수행한 대리 운전 기사가 고객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업무 시설이나 사무실 밀집 지역, 대규모 공사 현장 인근에서는 점심 시간 이후 오후 2-3시 사이 콜이 심심치 않게 뜹니다.
골프장 인근 거주 기사들이나 낮 시간 콜 수행을 원하는 기사들은 오후2시 전후로 가까운 골프장 인근에서 대기를 하면 게임 후 한잔씩들 하고 귀가를 하려는 손님들의 콜을 받을 수 있죠. 규모가 큰 골프 연습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콜이 나오고는 합니다.
이 유형의 고객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대리 운전 기사들의 핫스팟은 사무실 밀집 구역과 인접해 있는 유흥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강남, 여의도, 합정 등... 유명한 핫스팟들이 이에 속합니다.
주말에는 이 범위가 넓어지는 편입니다.
결혼식도 있고, 지인의 집에 방문한 사람들 다양한 이유로 평소에는 콜이 잘 나오지 않는 지역에서도 콜이 뜨기도 하지요.
②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린 사람들
흔하지는 않지만, 때로 도로 한 가운데서 콜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콜을 잡고 가보면 경찰들과 함께 있는 손님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분들은 음주 운전을 하다가 단속에 걸려서 단속 현장에서 대리 운전을 신청하신 분들이죠.
생각해 보면 단속 후 본인이 운전을 해서 귀가할 경우 경찰이 음주운전을 방조하는 게 되고, 그렇다고 경찰들이 개개인의 집까지 차를 운전해 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음주 단속 사실을 어떻게 가족들에게 숨기는가 하는 문제와 처벌 수위 입니다.
대리 운전 기사들은 이 분들의 상담도 해야 하고, 고민도 함께 해야 하며, 가는 동안 위로도 해 주어야 합니다.
음주 단속에 걸린 분들의 차를 운전하는 일은 여러모로 숙연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입니다.
③ 수면 내시경 등, 병원에 방문한 사람들
수면 내시경이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대리 운전을 신청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건강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입니다.
④ 주말 한정 : 결혼식장 하객
주말에는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말인 즉, 가족단위 손님들이나 친구들을 함께 태우고 이동하는 일이 많다는 거겠죠. 그런 이유로 경유 요청도 많고, 대기 시간이 길어져 원치 않는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몇년 전 쌩 초보 기사 시절,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마포역 인근에서 콜을 잡고 가보니, 모 호텔의 결혼식장이었고 손님은 당일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였습니다.
웨딩카를 몰아주기로 한 친구가 술에 취해 운전을 못하게 되었다며, 대리 운전을 신청했는데... 인천 공항까지 운행 후 공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차장 정보를 술에 취해 운전을 하지 못하는 신랑의 친구에게 보내주는 것으로 종료되는 콜이었죠.
콜 요금 외에 별도 수고비를 받기로 해서 나름 달달한 콜이었는데... 신부는 공항 가는 길 신랑에게 친구 욕을 했고... 이에 발끈한 신랑이 맞대응을 시작하면서 가는 길 내내 서로 쌍욕을 하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다시 이 신혼부부를 데리고 서울로 가면 어쩌나...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 손님들 잘 살고 계시나 궁금하네요.
⑤ 기타 - 초보 운전자, 밤샘 후 피곤하거나 그냥 운전이 귀찮은 사람들
주차를 해 달라고 대리 기사를 부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주차는 대리 기사들에게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킵니다. 대리 운전 기사들이 보험 처리를 해야 하는 일의 상당 수가 출발할 때, 주차할 때 발생합니다.
그냥 운전이 귀찮아서 대리 운전을 신청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콜을 잡고 가보면 유흥지역도 아니고, 술도 안 드신 손님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밤샘 후 피곤해 운전을 할 수 없거나, 그냥 운전이 귀찮아서 부르신 분들이죠. 이 분들은 운행을 시작하면 바로 취침 모드에 돌입합니다.
새 차 구매 후, 운전이 부담된다며 대리 운전을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거면 왜 차를 샀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손님들이죠.
대부분의 손님들이 음주 후 대리 운전을 이용하기 때문에, '취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대리 운전'의 진입 장벽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저 역시 처음 대리 운전을 나갔을 때, 취객들을 상대하고 감정 소모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대리 운전 경험이 쌓이면서 이 부분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진상'은 술에 취하나 안 취하나 '진상'입니다. 취객들과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업종에서도 '진상'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하죠. 애초에 일상 중에도 언제든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진상'들이죠.
그래도 콜을 잡고 통화할 때, 목소리가 꼬여 있거나 말을 잘 못하는 손님들의 경우 출발지로 이동하면서 많은 걱정을 하게 되죠. 그리고 혹시 모를 분쟁에 대비해 손님을 만나기 전 '녹음 어플'을 켜 둡니다.
대리 기사들이 만나는 손님들은 실로 다양하고, 각자가 가진 사연도 다양합니다.
택시 운행을 하시는 기사님들과는 다른 의미로 대리 기사들도 다양한 손님들과 다양한 경험을 이어갑니다.
카카오가 탁송을 중개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강남에서 재미있는 형태의 콜을 종종 보게 됩니다.
플랫폼을 개발한 카카오도 자신들이 만든 서비스가 그런 방식으로 사용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나중에 다양한 '콜'을 소개하면서 다뤄 볼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현재 시각 17시 30분.
이제 콜 대기에 들어갑니다.
[대리 일기 : 3] 꿀콜과 똥콜 사이에서... (0) | 2023.05.24 |
---|---|
[대리 일기 : 5] 세상에 사연 없는 대리 기사가 있으랴. (0) | 2023.05.22 |
[대리 일기 : 0] 대리 일기에 대해. (0) | 2023.05.20 |
[대리 일기 : 2] 출근도 퇴근도 덧 없다. (대리기사의 하루) (0) | 2023.05.18 |
[대리 일기 : 1] 대리의 짜세. (1) | 2023.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