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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접니다.
오늘 오전 중 처리해야 하는 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관계로다가 오늘 출근 전 일기를 적습니다.
저는 보통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대리 운전을 출발합니다.
야근을 하거나 다른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주변의 콜을 살피고 괜찮은 콜이 근거리에서 잡힐 때 '생존배낭'을 들고 거리로 나가죠.
어제는 정말... 저녁 8시가 다 되어 가도록 인근에서 콜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콜은 보통 반경 1km 이내에서 잡히는 콜입니다. 빠른 걸음으로 10분 이내에 도착하는 콜들을 위주로 수행하는데, 출발지인 '구디'에서는 1.5km 까지 선택지를 넓혀서 '공유 킥보드'를 이용하기도 하죠.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콜이 언제 잡힐지 모르겠는데, 저는 오늘 오전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적어도 02시에는 집에 들어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7시50분 결단을 내리고, 꿀콜을 바라는 경건한 마음으로 약속의 땅 '여의도 샛강역'으로 향했죠.
'약속의 땅'에서 출발을 기념하며 오늘은 '콜'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입니다.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손님들의 호출을 기사들은 '콜'이라고 부릅니다. 제품에 양품과 불량품이 있듯이, 기사들은 콜에서 '좋은 콜'과 '좋지 않은 콜'을 구분하죠. 좋은 콜은 속칭 '꿀콜'이라 부르고 기사들 입장에서 좋지 않은 콜을 '똥콜'이라 부릅니다.
대리기사라면, 누구든 자신에게 '꿀콜'이 떨어져서 달달하게 돈을 빨기를 바랄 겁니다. 이건 본능 같은 거라 덧 붙일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대리기사의 일이란 밤거리에서 꿀콜을 찾거나, 기다리거나, 기다림에 지쳐 꿀콜과 똥콜 사이 어딘가를 끝없이 헤메는 것으로 이뤄진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꿀콜의 조건은 좋은 단가와 좋은 착지(도착지점)입니다.
좋은 단가는 '시간 대비 달달하게 잡힌 금액'을 말하고, 좋은 착지는 '운행을 마치고 다음 콜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똥콜은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며칠 전 밤 11시3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어딘가에서 캡쳐했던 '콜 리스트'입니다. 카카오T대리 앱으로 일을 하시는 기사님들은 모두 같은 화면을 공유하는데요.
2023년 5월 이 화면을 캡쳐한 순간. 전 세계에 딱 이 5개의 콜만 있고, 이 중 하나를 고르는 순간 부터 다시 콜들이 접수된다면 '꿀콜'은 어떤 걸까요?
제 선택은 4번째 마포구 신수동을 가는 콜을 잡겠습니다. 단가는 제일 작지만, 시간대비 단가는 제일 높습니다. 그리고 홍대 상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콜이죠.
그에 반해, 가장 금액이 높은 콜은 제일 아래에 있는 콜인데 저는 쉽게 손가락이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32분 운전하고 32,000원이면 좋은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손님의 차에서 내린 이후를 생각한다면 기회비용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한 순간 최고의 '한 콜'을 수행하기 위해 기사들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대리 기사 본인과 손님과의 거리, 단가, 운행 시간, 착지, 이후 동선 등... 길면 2-3초, 짧으면 찰나의 순간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과는 오롯이 기사의 몫이니 말입니다.
때때로, 대리 기사가 콜을 잡지 않는다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후 대리 운전 기사가 배차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했다고 항변하시는 시민분들도 많죠.(이 부분 많은 설왕설래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것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떨어지는 것에 날개가 있듯이, 기사들이 안 잡는 '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리기사는 건별로 운전을 대리하고 비용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은 운전을 하지 못하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운전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의 안전한 귀가 후에 2-3시간을 거리에서 허비해야 한다면, 어떤 기사도 그 콜을 쉽게 잡지 못할 겁니다.(우리는 그런 지역을 '오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대리 운전을 요청하시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차를 이용해서, 내 기름 써서 가는데... 달랑 운전하나 해 주는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대리기사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 까지 고려해 '콜'을 수행하므로 시민들이 제시하는 '요금'에는 '콜 수행'에 따른 '기회비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만일 내가 올린 콜에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는다면 서비스 구조 상 기사에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전액 기사들에게 전가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겁니다.
물론 이런 설명에 대입할 수도 없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콜들도 넘치는 세상이, 대리 기사들이 누비는 밤거리의 일상입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강남을 단돈 10,000원에 가자는 콜(나 강남인데? 하는 느낌?)이 있다고 했을 때, 기사는 8,000원을 손에 쥐고자 25km 이상을 달려야 합니다.(실제로 이런 콜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구 하나 낚이라는 심정이겠죠. 그리고 낚이는 기사들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리 운전이 필요한 손님의 입장과 우리들 대리 기사의 대척점에는 '꿀콜'과 '똥콜'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콜'들은 '꿀'과 '똥' 사이에서 시장의 법칙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른 예시를 한번 볼까요?
1주일 전 쯤 캡쳐한 것으로... 제가 수행한 콜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 고수도 아닐 뿐더러, 배짱이 좋지도 않습니다.
제가 캡쳐를 한 순간은 1분 차이지만, 이 콜 카드는 2-3번 정도 콜을 잡았던 기사가 콜 수행을 취소 했고, 그에 따라 몇 번의 요금 조정을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65,000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하겠다고 기사들에게 제안을 한 건데, 이 단계에서 콜을 잡은 기사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경기 침체로 거리에는 대리 운전을 하겠다는 분들이 넘쳐납니다. 그런 이유로 운전 비용을 제시하고, 결정하는 권력은 기사들 보다는 손님들 쪽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기사들이 갈 수 없는 '오지' 내지는 '가격'이라는 게 있습니다.
위 콜을 예로 들면, 한번 45분 운전으로 5만원이 넘는 금액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시간이 아직 12시도 안된 시점에서 콜을 잡을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다면, 기사 역시 그에 따른 기회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3시간이면, 서울이나 기타 콜이 많은 지역에서 5-6번의 콜 수행으로 10만원 이상도 벌 수 있는 시간인 겁니다.)
그래서 손님들의 제안에 기사들은 취소 내지는 외면으로 응답을 하는 겁니다. 그 가격에 그 콜은 수행할 수 없다고 말이지요. 그럼에도 또 콜을 수행하는 기사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대부분 대리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초보 기사이거나, 숙제를 받았거나, 아니라면 봉사가 취미이신 분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꿀콜과 똥콜은 '장소, 시간, 기사의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그것은 손님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손님들과 우리들 대리운전 기사들이 직접 소통할 수 없으니, 서로 가격을 제시하며 타협하고, 꿀콜과 똥콜 사이 어디쯤에서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오늘도 대리운전 기사들은 그 합의점을 찾아 밤 거리를 헤메겠지요.
저도 이제 슬슬, 앱을 켜고 꿀콜과 똥콜 사이... 어디쯤에 있는 '내 콜'을 찾아 밤거리로 나가야 겠습니다.
굿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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