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일기 외전 01 : 로지발 대리운전 수수료 논란에 대한 개인적 생각 - https://just-way.tistory.com/26
안녕하세요. 접니다.
며칠 날이 추워서, 이제 진정 겨울 시즌에 돌입했는가 싶었는데, 며칠은 또 제법 견딜만한 온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무심하지만, 또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점에 거리는 번잡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합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지나는 누군가의 차에 앉아 맞고 있는 시간의 흐름은 여전하지만, 요즘 특히 많이 느껴지는 것은 옆자리나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한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날짜 변경 시간이 넘어가버린 늦은 시각, 용인에서 서울 성북구로 이동하는 자영업자 손님의 차를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창을 열고 깊게 전자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손님이 시선은 창밖으로 둔 채 혼잣말을 하듯이, 누군가에게 던지듯이 말을 합니다.
'오늘이 영업 마지막 날입니다. 같이 고생하던 친구들 한잔 먹이면서 저도 같이 한잔 했습니다. 내일... 아니 오늘이네. 이제 잠 좀 원없이 잘 수 있겠네요.'
50대 중반이 되었다는 손님은 3년 정도 열심히 노력한 영업장을 정리하고 마지막 영업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20년 넘게 종사하던 업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면서 시작한 '일'을 정리한다는 손님의 넋두리 같은 독백이거나 고백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40분은 더 가야 하는 길. 말주변 없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운전을 하고 있는 차 안에서는 한숨 진한 이야기 꽃이 계절을 잊고 한창 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현재의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 '대리운전'이라도 해 봐야 겠다는 친구놈의 상담을 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어젯밤 첫 콜을 잡아 보았다고 합니다. 하루 하루 밤거리를 열심히 헤메다 보면 언젠가는 운명처럼 소주 한잔 부딪힐 우연도 기대해 볼 수 있겠지요.
'요즘 대리운전 경기가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을 부쩍 많이 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민들의 경제 상황을 지근거리에서 체험하는 사람들이 '택시 기사'나 '대리 기사'들일 테니까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모범답안은 '글쎄요. 다들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는 겁니다. 대리운전 기사가 느끼는 경기를 묻는 질문의 뒤에 '나만 이렇게 힘든건가요?'라는 진짜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논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논파하면서 특출난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글은 그저 삶의 무게에 점점 질식하고 있는 현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는 저의 감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 대리운전에 대한 상담을 청한 친구에게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 대리운전 단가가 떨어지는 경향이 완연하다. 신규로 진입하는 기사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얼마간은 들어가는 시간에 비해 소득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잘 생각해 봐라.'
여의도나 강남과 같은 전통적인 상권에서 콜을 기다리는 기사들 사이에서는 '술 마시는 사람들 보다 대리기사들이 많다'는 푸념이 넘칩니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밤거리는 업소 안 자리에 앉은 사람들보다 거리에서 콜을 쪼는 사람들, 한사람이라도 태워 보려는 택시, 배달음식을 받으러 온 라이더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 처럼, 밤거리에는 사람도 많고 시간도 많습니다. 탈만한 콜이 없는 현실에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너무 낮은 단가의 콜이 순삭되는 상황을 보며 그 콜을 잡았을 누군가를 비웃다가 욕하기도 합니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갬성 넘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충실하게 살았던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감성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눈이 부시다 투덜거리기 바쁘고, 업소 밖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웃음소리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안타까운 것 같으면서도 위안이 됩니다. 제게 대리운전 경기를 물어보는 사람들 중, 많은 수의 사람들도 확인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나만 이런 건 아니야. 다들 힘들잖아.'라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지금 제가 느끼는 이런 상황은 '무능한 정부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조적인 모순의 결과일 수 있겠죠. 미디어 속 전문가들은 알아먹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며, 서로 다른 예측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이야기에 별 감흥이 없는 건, 이미 짖눌리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일 겁니다.
카카오 대리운전 앱에는 기사들끼리 간단하게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심야 시간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능인데,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몇글자 되지도 않는 그 메시지로도 우리는 훌륭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즘 부쩍 늘어난 메시지는 '콜 없음'에 대한 한탄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언제나 정치적 성향에 맞춘 유치한 말싸움으로 귀결되죠. 또, 다른 기사들의 투잡 여부를 확인하려는 메시지도 자주 노출됩니다. 아마도, '나만 그런가?'를 확인하고 싶은 심리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두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것 같습니다. 무게에 짓눌리다 못해 항복을 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밤거리에서 '대리 기사'로서의 삶에 동참하기도 했고, 일부는 '라이더'로, 일부는 '일확천금'으로...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태워 '돈'을 벌고자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한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은 단순히 그날 그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택시나 대리운전 같이 매일 매일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경향성은 분명히 느껴지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대리운전에 귀가길을 얹고자 하는 현실은 '알뜰한 소비 성향의 변화'가 아닌 팍팍해지거나 악화하고 있는 '생존 여건'을 상징하는 것일 겁니다.
오늘은 또 어느 정도 깊이의 한숨 속에서 운전을 하게 될까요?
'그래도 기사님은 대리라도 하고 있으니, 부럽네요.'라던 어떤 차주의 한 숨 섞인 독백이 밟히는 시절입니다.
바라건데, 새해에는 모두들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조금은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길 기원합니다.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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