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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일기 3 : 끌콜과 똥콜 사이에서... - https://just-way.tistory.com/7
대리일기 4 : 당신에게 대리 운전이 필요할 때. - https://just-way.tistory.com/9
대리일기 5 : 세상에 사연 없는 대리 기사가 있으랴. - https://just-way.tistory.com/10
대리일기 6 : 오후 6시 난 퇴근 후, 출근을 준비한다. - https://just-way.tistory.com/11
안녕하세요. 접니다.
오늘은 드디어, 대리운전의 실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무'라고 해야, 대단하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의 실무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상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적어 내려가는 이야기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이기에 모든 대리운전 기사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첫콜을 잡다.
대리운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루트는 크게 2가지 입니다.
① 대리운전 업체를 통한 요청 : 전화 통화를 이용한 요청
② 대리운전 어플(카카오T대리, T맵대리운전, 기타 프로그램 어플 등)을 통한 요청 : 고객이 직접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요금을 입력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는 못 하겠습니다. 대리운전 업체들의 경우 이용에 따른 마일리지 적립 등,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카카오나 티맵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릅니다.(제가 고객으로 카카오T를 써 본 적이 거의...)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간과 장소를 정해두고 콜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순번을 두고 콜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의 수입은 빠른 눈과 손가락의 순발력 등에 좌우되고 '운빨'의 힘이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보통 초저녁 부터 9시 까지는 특별히 착지를 구분하지 않고 콜을 수행하는 편입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데 얼마나 편리한가?에 대해서 집중하는 편인데, 초저녁에 2-3콜 정도를 수행해서 4-5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려두면 당일 콜 수행은 한결 여유롭기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는 카카오T대리 기사용 앱의 콜대기 화면입니다. 하단의 콜 리스트 버튼을 터치하면, 현재 올라와 있는 콜 정보를 보고 운행을 할 수 있죠. 문제는 소위 꿀콜이라 부를 수 있는 좋은 콜은 희귀하고, 꿀 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콜'이라고 할만한 콜들은 경쟁이 어마무시 합니다.
나는 콜 카드의 출발지와 도착지 확인도 몬 했는데, 이미 누군가 콜을 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사실 이런 경우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콜을 잡은 후 내용을 확인하고 뱉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 보겠습니다.)
하여간 비루한 몸뚱이를 최대한 갈궈서 첫 콜을 잡으면, 이제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동을 하는 방법의 기본은 걷는 겁니다. 공유 킥보드나 자전거, 개인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근본은 누가 뭐래도 걸어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멀리 있는 콜을 잡으면 본인에게나 손님에게나 피해가 생깁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가장 무난한 거리는 1Km 이내에서 콜을 잡는 겁니다. 물론, 콜을 잡는 순간의 위치가 어딘가에 따라 적절히 조절을 해야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반복 학습에 의해 몸으로 익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길이 없습니다.(예를 들어 앱에서는 직선거리로 500m를 이동하면 된다고 나오는데... 이동 루트 가운데 고속도로가 있거나 철길이 있다면... 또는 한강을 건너야 하는 위치라면 앱에서 보여주는 거리와 무관하게 이동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대리운전을 요청하는 손님들 중에는 대리운전 기사가 킥보드를 가지고 와서 본인의 차에 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킥보드를 이용하는 대리운전 기사는 오지 말라는 메모를 남기는 손님들도 있고요. 이런 건 '케바케'라서 뭐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냥 걸어서 이동하고 최대한 지근거리의 콜을 잡아서 일을 하는 편입니다.
- 손님과 만남.
대리운전 업체에서는 기사가 콜을 잡으면 일단 손님과 통화를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리운전 업체의 역량 과시 및 고객 대응의 일환인 이유가 가장 클 겁니다.
카카오T대리는 딱히 행동 요령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제휴 콜'이라고 해서 대리운전 업체에서 소화되지 않는 콜들을 카카오T대리 앱으로 날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콜을 잡으면, 해당 업체의 콜센터에서 기사들에게 전화를 해서 '고객님과 먼저 통화부터 해 주세요.'라고 통화 요청을 합니다.(네~라고 하고 딱히 전화를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고객의 대기 시간이 꽤 길어진 경우이기 때문에 업체에서는 전화를 해서 자신들 업체 소속 기사라고 이야기해 달라고 하지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카카오T대리 앱을 주로 이용하니까 굳이 소속을 밝힌다면 카카오T대리 기사인 거고, 업체들끼리의 콜 정보 공유는 업체들끼리의 거래이지 저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고객에게 전화부터 해야 한다는 업체의 요청은 요청인 거고, 전 제가 하던 대로 콜을 수행하면 됩니다.
앱에서 보여진 장소에 도착했다면 이제 손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앱에 콜 수행을 등록하고 운행을 시작하면 되는데... 이 과정이 또 상당한 난관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앱에 표시된 착지에 갔는데, 손님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카오T대리 앱은 고객이 직접 출발지와 착지를 입력하는데... 이동 중에 현재 위치로 출발지를 찍어 버리거나 혹은 핀을 확인하지 않고 바로 확인을 누르면 현재 위치 정보에 오류가 생기고, 이 경우 앱을 보고 간 착지에 고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최대 1.5km의 오차도 경험했었습니다. 이럴 경우 전화로 고객의 짜증을 들어 넘겨야 하는 건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멘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두번째로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입니다.
벨소리를 못 들었거나 그냥 무시한 거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술에 취해 차안에서 잠이 든 경우라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 제 대응을 소개하자면, 10분 정도 대기하면서 3-4차례 전화를 넣어 보고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상황실로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콜을 취소해 달라고 한 다음 새로운 콜을 잡습니다. 몇시간 후 잠에서 깬 손님들에게 항의 전화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참 여러가지 감정 노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손님의 알뜰함이 지나쳐 여러명의 대리운전 기사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이 여러 업체에 서로 다른 가격으로 콜을 요청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서로 다른 가격의 콜을 올려 놓고 가장 먼저 콜을 잡는 기사와 출발을 해 버리거나, 가장 낮은 가격의 기사가 배정되는 시점에 모든 다른 콜을 취소해 버리는 경우 이미 출발지로 이동하고 있던 기사들은 시간도 버리고, 체력도 방전되며, 멘탈이 털려버리죠. 허탈함에 빠진 3-4명의 기사들이 이미 손님이 떠난 출발지에 모여 손님 욕을 하는 것으로 멘탈을 회복시키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저도 그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는 건 생략합니다.)
카카오T대리의 경우 여러차례 콜을 취소하는 고객들의 앱 사용 제한 등을 한다고 콜 취소시 안내 문구를 노출해 주지만, 실제 제한을 하는지는 우리 기사들은 알 수 없죠.
운전대에 앉아 운행을 시작하기 까지 너무 긴 시간을 대기하게 되는 문제도 감내해야 합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경우 대기비용을 추가로 지불하는 손님들은 그나마 기사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피해를 일부 보상해 주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거 몇분 못 기다려 주냐?'며 30분이 넘게 대기를 시키기도 하죠.
손님이 초행길임을 이유로 현재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등 다른 난관들도 많지만, 모든 난관을 뚫고 운행을 시작한다면 이제 손님이 설정한 도착지에서 운행을 종료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어색함'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운전을 대신해 주는 '기사'이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의 차를 운전하게 되는 거죠. 조향장치를 비롯해 운행과 필요한 장치 외에는 건드리기 어려운 점이 있고, 적막이 흐르는 차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운전을 하는 건 여러모로 피곤함을 선사하는 일입니다.
보통 이런 대화를 하게 되죠.
사례 1.
손님 : 기사님. 왜 이 길로...
기사 : 내비게이션 안내가...
손님 : 아... 네...
기사 : ...
사례 2.
손님 : 길이 많이 밀리네요.
기사 : 그러네요.
손님 : ... 혹시 언제쯤 도착....
기사 : ... 글쎄요...
사례 3.
기사 : 저... 공조기를 좀 켜도 될까요? 더워서...
손님 : 아... 네.
기사 : 감사합니다.
손님 : ... 무슨...
70-80%의 손님들과는 위 사례 정도의 대화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정체된 도로를 이동하거나 길이 막히는 시간대에 5-60분을 말 없이 운전을 하고 나면, 운행 종료를 알릴 때,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합니다.
- 운행 종료
도착지점에 도착해 주차까지 하고 나면 하나의 콜을 완료한 겁니다.
밀어서 운행 종료를 하고 나면 비용이 정산되고, 카드 결제는 포인트로 지급되고 현금 결제는 수수료 만큼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운행 종료 시에도 몇가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차장 탐험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주거 밀집 지역 내 골목에서도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도로를 이동해서 온 시간만큼 주차장을 돌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대리운전 기사의 업무는 최종적으로 주차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차를 해줘야 하는데... 주차할 공간을 만드는 것은 대리 기사의 업무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에... 종종 기사들과 손님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어찌 어찌 주차를 했더라도 주차장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것이 탐험이 되기도 합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란 크기도 크기지만, 그 안에서 방향을 잡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도보로 이동할 경우 출구로의 이동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② 특정한 형태로의 주차 요구
법정 기준에 맞춘 주차장이 아니라, 특정한 위치에 자신이 주차하던 방식 그대로 주차를 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기사들은 '주차를 못 해서'가 아니라 혹시 발생할 접촉 사고나 차량 손상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손님이야 본인 차고, 차가 조금 긁히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지만, 대리 기사의 경우 무조건 보험 처리를 해야해서 며칠 벌이를 한번에 날릴 수도 있습니다.
도로 주행 시에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대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확실한 준법 운전자 입니다. 그래도 때때로 신호 위반 등, 범칙금 고지서를 받기도 하죠.
이런 저런 난관을 뚫고 주차까지 마무리 하면 하나의 콜 수행이 완전히 끝난 겁니다.
이제 다시 대기를 하며, 다음 콜을 잡거나 아니면 콜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장소로 이동해 콜을 잡아야 합니다.
'콜 대기'와 '이동'은 콜 수행을 제외하면, '대리 운전의 전부'와 같습니다.
다음 글은 '대기'와 '이동'에 관한 겁니다.
그럼 모두들 '꿀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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