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비의 부업일기

[대리 일기 : 8]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사치 : 대기와 이동

Ginbee's Wonderland 2023. 6. 1. 05:35
반응형

대리일기 1 : 대리의 짜세 - https://just-way.tistory.com/4
대리일기 2 : 출근도 퇴근도 덧 없다 - https://just-way.tistory.com/6
대리일기 3 : 끌콜과 똥콜 사이에서... - https://just-way.tistory.com/7
대리일기 4 : 당신에게 대리 운전이 필요할 때. - https://just-way.tistory.com/9
대리일기 5 : 세상에 사연 없는 대리 기사가 있으랴. - https://just-way.tistory.com/10
대리일기 6 : 오후 6시 난 퇴근 후, 출근을 준비한다. - https://just-way.tistory.com/11

대리일기 7 : 손은 눈보다 빠르다. - https://just-way.tistory.com/13

 

 

안녕하세요. 접니다.

 

오랜만에 '일기'를 씁니다.(이 글을 일기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테지만, 이 글이 '일기'가 아니라면, 그건 '님'이 옳습니다. 시비 노노요.)

 

지난 번 일기를 적고 나서 5월 마지막 주말부터 지방에도 가야 했고, 만날 사람들도 있었고 해서... 오늘까지 5일 정도 '콜'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불성실함의 결과는 '수입의 감소'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봅니다.(손님들... 죄송함다!)

 

지난 7편에서 예고한 대로, 오늘의 주제는 '대리 운전'의 모든 것. 그 어떤 능력 있는 대리 기사도 피해갈 수 없는 '대기'와 '이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저는 '대리 운전'이라는 일이 40%의 운전과 30%의 대기, 30%의 이동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루 10시간 일을 한다고 치면 실제 운전은 4시간을 하고 3시간은 콜을 잡기 위해 '멍'을 때리고 3시간은 걷거나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력이나 요령에 따라 이 구성비가 변하기는 하겠지만, 저는 그렇다고요.

 

자. 그럼 지금 부터 대리 운전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인 '대기'와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썸남 or 썸녀의 문자를 기다리거나, 불판위의 삼겹살이 노릇하게 구워지기를 기다리거나, 10분 후에 올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앞둔 그런 '기다림'을 상상해 봅시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 처럼, 나름의 낭만과 여유를 느낄 수 있죠. 그러나 '콜'을 기다리는 '대리 기사'의 '기다림'과 '미학 속 기다림' 사이에는 1AU 보다 아주 조금 더 먼 거리가 존재합니다.

 

삼겹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대리 기사의 '대기'는 낭만적인 기다림이라기 보다는 '돈'을 향한 욕망과 갈등, 그리고 회한이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습니다. 초반에는 '꿀콜'에 대한 기대가, 중반에는 '갈등'이, 그리고 종반에는 '아까 그 콜을 잡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로 머리를 쥐어 뜯는 루틴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대리 기사들의 '대기'입니다. 이런 상황에 낭만은 너무 사치.......... 겠죠?

 

'대기'는 기본적으로 '콜'을 기다리는 겁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꿀콜'이거나 혹은 '좋은 콜'을 기다리는 거지요. 사실, 저녁 7시가 넘어가면 콜은 언제든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선뜻 손가락이 가는 '콜'은 판타지 소설 속 유니콘 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 여자친구와 같습니다.

 

초보 대리 기사 시절의 저는 '콜'이라는 것의 본질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콜을 기다리는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기사를 읽기도 하며, 나름의 자기 계발을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지금도 어설프고, 배울 것이 많지만 그래도 몇년의 경험이 쌓인 지금 제 '대기' 시간은 언제나 눈에 힘을 주게 되는 '노동'입니다.

 

콜을 쪼는 나(이 정도는 아니... 뭐... 비슷해요.)

지난 편에서 이야기한대로 '콜'은 순번을 정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대리 운전' 역시 차례를 기다려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밤거리'라는 정글에 던져진 '콜 사냥꾼' 들이고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콜을 수행해야 돈을 손에 쥐고 귀가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입니다.

 

위 이미지와 같은 눈을 하고 스마트폰을 갈구고 또 갈궈도, 대부분의 콜은 제 '콜 리스트'를 스쳐 지나갑니다. 마치, 우리들의 월급 처럼요. 사용하는 '툴'이나 이런 저런 차이로 인해 대리 기사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 대부분의 대리 기사들이 동의할 겁니다.

 

이러고 있으면 패가망신 하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대기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은 누가 봐도 '똥'인 콜들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을 보며, '이 낚시에 걸리는 호구는 누구일까?'를 상상하는 겁니다. 같은 업을 공유하는 동지애적 관점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밤거리 '잠을 잊은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랄까요? 때로 내가 낚시 바늘에 걸려 파닥거리는 생선이 되기도 하니까... 그 정도 짓궂음은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겁니다.

 

대기 시간은 정해진 규격이 없습니다. 때로는 하나의 콜을 수행하고 1분도 안되어 다음 콜을 잡는 행운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2시간이 넘도록 눈에 힘을 주다가 의도치 않게 쌍꺼풀이 생겨 외모 +1의 레벨업을 하기도 합니다. 대중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콜을 마치면, 일단 콜을 완료하고 콜 리스트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큰길 쪽으로 이동을 하죠. 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딱 좋은 도착지가 아닌 다음에는 모든 대리 기사들이 일단 '대기'를 위한 '이동'을 해야 합니다. 소위 '오지'(앞으로는 비선호지역이라고 하겠습니다. '오지'라고 하면 제 의도와는 상관 없이 해당 지역 거주자들께서 불쾌할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불리는 지역에 떨어졌다면 '대기'와 '이동'이 혼재된 '생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단 하나의 콜을 수행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대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적당히 좋은 위치(담배를 피울 수 있고, 행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급할 때를 대비해 화장실이 가깝거나 노상에서라도 해결할 수 있는 곳.)를 잡고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롭게 콜 리스트 버튼을 누르죠.

 

이 여유는 대기 시간 10분이 넘어가면서 슬슬 '갈등'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20분이 넘어가면 '현실 자각'의 단계로 넘어가고 30분 후에는 '부정', 이후 '분노', '후회', '수용', 단계를 지나 1시간 정도를 넘기면 '체념'의 상태가 되어 급격하게 '우울증'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회'의 상태가 되면, 10분 전, 도착지가 나빠 안 잡은 '콜'에 미련이 생기기 시작하고, 지금이라도 다시 콜이 떳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더니... 20분전 출발지와 도착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사라진 콜의 출발지와 도착지가 보이는 환각도 경험합니다. 이 정도 되면 '지구 내핵'에서 콜을 날려도 굴착을 시작할 각오가 생겼지만, 막상 또 '비선호지역으로 가는 콜'에는 손가락이 잘 가지 않아 '이 못난 놈!'이라며 자책을 반복하게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소인... '꿀콜'을 보았습니다! .... 못난 놈!

어쩌면 귀가길에 느끼는 피곤함은 아마도 끝없이 반복하게 되는 감정의 기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콜'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은 아주 좋은 말이지만... 그 누구도 체화시킬 수는 없는 것 처럼 대리 기사들도 이 '대기의 고통'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은 가능했을까요?

 

저의 경우 대기를 하면서 원하는 콜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괜찮은 도착지로 가는 콜입니다. 이 두가지의 조건이 '대기'에 이어 대리 운전의 또 다른 업보인 '이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콜 리스트' 화면

 

위 이미지는 제가 일을 하면서 보는 일반적인 '콜 리스트'입니다. 출발지인 지역명 위의 숫자는 지금 '내 위치'와 '콜의 출발지' 사이의 거리입니다. 위 리스트는 지금 나의 위치 반경 4.8km 내에는 아무런 콜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4.8km 떨어진 신길4동의 콜을 잡는다면 택시라도 타서 이동을 해야 할텐데... 그러면 사실 '콜'을 수행하는 의미가 없겠지요.

 

'대리 운전'은 단순히 '콜'을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닙니다. 일반 기업에서 '판매관리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대리 기사들도 대리 수행 간 비용을 최소화해야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콜을 많이 수행해도 '택시'를 타거나 '공유 킥보드'를 자주 이용하면 수입의 30% 이상을 이동 비용으로 지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급 환산 시 최저시급(2023년 기준 9,620원)도 안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서 콜을 잡고, 또 할 수 있을 만큼 콜이 나올 만한 지역의 가장 중심에서 대기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가장 선호하는 출발지와의 거리는 평지의 경우로 800m 이내입니다. 등산(오르막 길)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500m 이내를 한계로 봅니다. 이동 시간 10분 이내를 기준점으로 하는 건데요.

 

평지 기준, 이 정도면 아주 '개꿀' 입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먼 거리의 콜을 잡거나, 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비선호지역에 도착해서 근거리의 콜을 발견하기 어렵거나, 빨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택시'라도 타려 하지만... 사실 대리 기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지역은 택시 기사들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 이런 거라면 이해가 될까요?

 

그럼 몇가지 선택지들을 한번 알아보죠.

 

1. 공유킥보드

 

흔히들 공유 킥보드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거 쉽지 않습니다. 낮 시간에 대로쪽에 나와 있던 킥 보드들은 밤이 되면 골목이나 거주 지역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막상 쓰려고 하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하는 건, 견인이 되거나 이용 제외 지역에서 반납을 하게 되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입니다.

 

견인이 되면 4만원의 견인료와 시간에 따른 보관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게 어떨 때 견인이 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용 제외 지역도 마찬가진데... 내가 이동해야 하는 지역이 이용 제외 지역이라면... 돈은 돈대로 쓰고, 달리기는 달리기대로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공유킥보드가 커버리지가 넓지 못하다는 현실을 알게 됩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자치구별로 이용 제외 지역인 업체들이 있어서, 매번 확인 하는 것도 번거롭게 되고는 합니다. 잠금 해제시 1,000원에서 1,500원, 이용 시간 1분당 100원에서 200원 사이의 적지 않은 이용료보다 이용할 수 없는 수단에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생각보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2. 공유 자전거

 

공유킥보드하고 비슷합니다.

 

전기 자전거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공유 킥보드보다 비용이 저렴해서 좀 의외이기는 했습니다.

 

3. 택시

 

택시는 사실 거의 고려하지 못하는 수단입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애초에 대리기사들과 같은 행동 양식을 가진 택시의 경우에는 필요할 때는 콜 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택시와 대리기사의 이해가 일치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새벽 2시 이후 경기도 일원의 지방에서 서울로 복귀를 하는 경우입니다.

 

좋았어!

새벽2시 반거리를 헤메던 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모지역에 있습니다. 이제 서울로 복귀를 생각해야 하는데... 주변의 콜은 모두 저를 서울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곳은 경기도. 더구나 시간은 새벽2시. 서울로 가는 콜을 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서울로부터 멀어지더라도 그냥 콜을 더 뛰고, 5시 이후 첫차로 귀가하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택시도 같은 시간에는 같은 상황에 빠집니다. 서울에서 손님을 싣고 왔는데... 빈차로 가지 않는 방법은 서울로 가는 손님을 태우는 것 뿐이죠.

 

이 지점에서 택시와 대리기사들의 이해가 일치합니다.

 

서울로 복귀를 하고자 하는 기사 3-4명이 모여, 1인당 일정한 금액(미터 요금보다는 훨씬 싼 금액)을 지출하고 택시에 탑승해 서울로 오는 거죠. 이 경우에는 도착지를 보통 강남역 인근으로 정합니다. 대리 기사들에게도 '약속의 땅'이고, 택시 기사들에게도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남 쪽에서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고양 쪽에서는 보통 DMC나 합정역을 도착지로 택시를 이용하는데, 대리 기사들은 이런 이동을 '택틀'이라고 합니다. '택시와 셔틀'의 합성어죠.

 

모든 택시 기사들이 이런 이동을 해 주는 것은 아니고, 때로 혼자서 딜을 쳐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반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방식은 날짜 변경선을 지난 이후 대리 기사들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 가장 유용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4. 셔틀

 

대리 기사들의 이동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되는 노선의 승합차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리운전 업체들이 버스를 투입해 이동을 지원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지역의 셔틀들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비용은 보통 1,000원에서 3,000원 사이에서 냈었는데... 부평 쪽에서 부천 상동을 지나 화곡역을 찍고 합정으로 다니던 셔틀이나 수원에서 분당으로 분당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던 셔틀을 자주 이용했었습니다. 수도권 셔틀의 노선도가 대리 운전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보기 어려워져서 마이 아쉽습니다.

 

5. 심야버스

 

서울 지역 내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심야 버스' 때문입니다.

 

배차시간이 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누군가 날 위해 오늘도 버스를 몰아준다니, 그것만으로도 서울에 뼈를 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6. 달리기!

 

힘들어! 죽습니다!

 

7. 자가 킥보드

 

써본 적이 없어 저는 잘 모릅니다.

 

이야기한 바와 같이 '대리 운전'에서 '대기'와 '이동'의 지분은 60%에 육박합니다. 이 둘이 힘을 합치면 '대리 운전'에서 '운전'을 빼야 하는 고행의 길이 되어 버리는 것이 대리 운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고통이 있기에 손에 쥔 '돈'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더욱 간절해지기도 하죠.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부터는 다시 콜을 쫍니다.

 

밤거리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행쇼~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