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일기 : 17] 비선호지역(오지)에 대한 고찰 - 조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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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일기 13 : 밤거리에서 콜 사냥을 시작하려를 당신에게. https://just-way.tistory.com/21
대리일기 14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1. https://just-way.tistory.com/22
대리일기 15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2. https://just-way.tistory.com/23
대리일기 16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3. https://just-way.tistory.com/24
안녕하세요. 접니다.
오늘은 대리운전 판에서 거를 수 없는, 반드시 한번은 겪게 되는... 아니 수시로 겪게 되는 '오지 탐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오지(奧地)'의 사전적 의미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한 땅을 의미하지만, 대리 기사들에게 '오지'는 '이동이 어렵고, 콜 연계가 쉽지 않아서 피하게 되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오지'라는 단어 대신 '비선호지역'이라는 단어로 쓰도록 하겠습니다.(어감이 쫌...)
1. 공통사항
세상은 넓고, 사람은 어디에나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콜이 콜 연계성이 좋은 도착지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리기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지역은 공통적으로 '상권 형성이 부족한 베드 타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밤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콜은 '베드 타운'으로 향하는 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겁니다.
상권이 넓게 분포하고, 대중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리 운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베드 타운'은 차량이 없으면 경제, 문화, 사회적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베드 타운 거주자들이 '대리 운전'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죠.
택시 기사, 대리 기사들이 소위 '삼릉(정릉, 공릉, 태릉) 오계(상계, 중계, 하계, 석계, 월계)'를 선호하지 않거나 기피하는 이유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유로는 위 지역에서 발생하는 콜들이 주로 의정부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도 있지요.
콜리스트를 보다 보면, 지역 별로 콜이 일정한 방향성을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서울 한정입니다. 다른 지역은 그 지역만의 특색이라는 게 있겠죠.)
위에 소개한 '삼릉오계'를 예로 들면, 그 지역에서 의정부나 양주 방향의 콜들을 잡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생활권'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로 콜을 수행하는 서울 서남권을 보면 강서구에서는 주로 부천이나 인천으로 가는 콜을 잡게 될 확률이 높고, 구로구에서는 광명이나 안양, 안산이나 수원으로 가는 콜을 보거나 잡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서울에서 이런 방향성에서 벗어나 콜이 발생하는 지역은 제 경험상, 여의도, 홍대, 강남 일대 정도입니다.
강남에서는 서울을 벗어난다고 하면, 주로 성남, 용인, 광주, 그리고 수원입니다.
아무래도 그 쪽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이 강남권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겠죠.
이런 방향성에 근거해서 '베드 타운'이라는 공통점을 적용하면 대리기사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지역을 대충 유츄할 수 있습니다.
2. 자연주의 VS 비자연주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질 높은 삶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은퇴 후에 귀촌과 귀농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요즘 신도시나 새롭게 건축되는 아파트들은 최대한 녹지를 확보하고 도보 환경을 구축해 입주자들을 유혹하죠.
그런데, 이런 자연주의적인 환경은 대리기사들에게는 적대적인 환경입니다.
특히, 서울 외곽에 전원주택 단지 같은 곳에 나갔다가는 정말 '오지 탐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몇년 전 경험이지만, 고양시의 모 지역에 가는 콜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이름이 아주 이뻤습니다.
숲냄새 가득한 산길을 달려서 주차를 해 주고 나니, 이름 모를 산길을 걸어야 함을 알았죠.
지도 앱을 열어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대충 시내 방향을 가늠해서 걷고 있는데, 10분을 걸어도 지나가는 차 한대를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자연' 속이었습니다.
9월 정도라 어느 정도 시원해진 시기였는데도 30분 정도 걸으니 땀으로 범벅이 된 와중에 사람은 그림자도 안 보이고, 10km 이내에서는 택시도 콜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개들도 보이고... 난감함을 넘어 조금은 무섭더라고요.
한동안 땀을 닦으며 조난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차에 승합차 한대가 제 뒤에서 접근을 해 오고 있었고, 차 앞에 뛰어들어 정말 가련한 표정으로 빌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ㅜ ㅜ;'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절 보시더니 정발산 인근까지 태워 주셔서 콜 종료 후 1시간 30분 만에 네온사인 아래 설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그 쪽 콜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그 고생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낯선 곳에 가는 콜을 덥썩 잡아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고양에서 주로 활동하는 기사님들은 저 같이 고생을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죠.
또 몇번의 경험들이 쌓인 뒤로는 '숲', '호반', '리버'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도착지의 콜들은 아무래도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리 운전'이 필요한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고려할 필요가 크지 않습니다.
해서 '콜'을 날릴 때, 대리 기사가 겪을지도 모를 고생에 대한 비용을 추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 기사들은 더 그 지역을 기피하게 되고... 일종의 악순환 같기도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동'이나 '면, 리' 쪽으로 가는 콜을 잡을 때는 언제나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초라하니까요.
3. 슬기로운 대리 생활
우리들, 인류의 행동 방식은 의외성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것과는 관련없는 선택을 하고는 한다는 거죠.
특히, 눈 앞에서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리스크는 1시간 후의 나에게 맡기고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겁니다.
결국, 몸으로 익히고 자신만의 리스크 회피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것 외에 왕도는 없는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되도록, 낯선 지역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대리운전 3년차, 나름 업력이 쌓였다고 생각하던 차에 하나의 콜을 잡게 됩니다.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
처음 보는 이름의 지역이었지만, '중구'라고 하니 왠지 인천의 중앙에 위치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40분 후에 알게 되죠.
내가 12시30분에 영종도에 던져 졌다는 사실을 말이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여기 저기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었고, 허허벌판에 도로들만 뚫려 있는 상황이었는데, 차도는 그나마 아스팔트라도 보이지만 인도는 사람들이 걷지를 않으니 보도블럭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찌 어찌 40분 정도를 걸어서 운서역 인근에 도착을 했는데... 섬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역 주변이라 편의점이 있었고, 그 앞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으며 5시간을 버틴 끝에 첫차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나올 수 있었지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날 하루는 완전히 조진 겁니다.
잘 모르는 지역에는 안 간다는 원칙을 충분히 세웠다고 생각했는데, 45,000원의 콜 카드가 올라오자, 저도 모르게 수락을 눌러버린 거죠.
영종도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이런 대리 기사들의 애로사항을 좀 고려해서 비용을 지불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슬기로운 대리 생활의 기본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최대한 지키는 것입니다.
콜을 잡는 원칙, 일하는 시간, 하루 목표치 등을 지키며 무리하지 않는 것.
그러나 그 원칙을 지키며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리운전은 1시간 후 내 위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목표 수익을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콜들을 놓치다 보면 조급해 지고, 때로는 알면서도 비선호지역의 콜에 손이 가기도 하죠.(대부분 기사들이 콜 수락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이 낮아 접근성이 높아집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다 좋은 추억이 되겠지만, 겪을 당시에는 뭐랄까... 내가 이러려고 대리 운전을 하나... 자괴감이 들고 뭐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익숙한 지역을 중심으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콜을 타는 겁니다.
대체로 공통된 비선호지역이 있겠지만, 또 기사 마다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서로 다른 기준들이 있을 겁니다.
이전 글에서 썼지만, 귀가 콜을 잡을 때는 거주지역 인근의 비선호지역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 잘 생각하시면서 슬기로운 부업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다음 글 주제는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