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일기 : 18] 피할 수 없는 복병 - '경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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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일기 2 : 출근도 퇴근도 덧 없다 - https://just-way.tistory.com/6
대리일기 3 : 끌콜과 똥콜 사이에서... - https://just-way.tistory.com/7
대리일기 4 : 당신에게 대리 운전이 필요할 때. - https://just-way.tistory.com/9
대리일기 5 : 세상에 사연 없는 대리 기사가 있으랴. - https://just-way.tistory.com/10
대리일기 6 : 오후 6시 난 퇴근 후, 출근을 준비한다. - https://just-way.tistory.co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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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일기 8 :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사치 - https://just-way.tistory.com/14
대리일기 9 : '콜'의 발생학 - https://just-way.tistory.com/16
대리일기 10 : 대리운전의 미래 - https://just-way.tistory.com/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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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일기 13 : 밤거리에서 콜 사냥을 시작하려를 당신에게. https://just-way.tistory.com/21
대리일기 14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1. https://just-way.tistory.com/22
대리일기 15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2. https://just-way.tistory.com/23
대리일기 16 : 대리운전 무작정 따라하기 3. https://just-way.tistory.com/24
대리일기 17 : 비선호지역에 대한 고찰. https://just-way.tistory.com/25
안녕하세요. 접니다.
오늘 이야기는 '경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유'란 모두들 아시듯, "원유를 상압으로 증류할 때 등유 다음으로 얻어지는 기름"을 말합니다. 요즘 경제 상황도 안 좋은데, 기름 값이 많이 오르고 이... (그만!)
오늘 이야기할 '경유'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어떤 곳을 거쳐 지나갈 때를 뜻하는 '경유'입니다만, 대리 운전의 세계에서 '경유'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고객이 추가한 목적지에 들르는 일'을 말하고, '경유콜'이란 '복수의 목적지를 가진 콜'을 말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지 하나를 '대리운전카페'에서 퍼왔습니다. 보통 제가 수행한 콜을 캡쳐해서 이용하는데, 파일을 급하게 찾으려니 잘 안보여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리운전 카페에서는 대리운전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고려하신다면 한번씩 들러서 선배 기사들의 경험도 확인하시고, 정보도 얻어보시길 바랍니다.
일단, 옆 이미지의 콜 카드는 가장 기본적인 '경유 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단가가 많이 아쉽지만... 그건 뭐 부르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지금, 콜을 올린 사람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에서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을 가려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을 집까지 데려다 준다던가, 연인을 배웅해 준다던가 하는 거요.)로 목적에 가기 전에 김포시 풍무동에 들렀다 가자고 하는 겁니다.
인천 계산동 > 김포시 풍무동 > 인천 청라동의 운행이 18분만에 끝날리는 없으니, 저 시간은 '카카오 맵 Ai'의 오작동이거나, 아니라면 콜을 수행하게 만들려하는 '음모(?)' 겠죠?
요즘 경유 콜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아마도 택시요금 인상의 여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추가 요금을 내더라도 '택시비'보다 싸다는 이야기들을 대 놓고 듣는 상황입니다.
위 예시 '경유 콜'을 보자면 금액은 아쉽지만 그나마 추가된 목적지가 '하나'라는데 위안을 가지게 됩니다. 3개-4개씩 경유지를 설정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1. 가는 길이에요.
그래도 위 콜 처럼 경유지를 설정해 호출을 하는 경우는 안 잡으면 되기 때문에 불만이 없습니다. 경유 표시가 없는 콜을 잡았는데, 현장에 도착해 출발하고 나서야 '경유 요청'을 하는 경우가 문제가 됩니다.(갑자기 경유지가 2곳 이상이라고 말할 때는 정말... 고객의 뒤통수를 한대 갈겨 버리고 싶죠.)
출발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경유지 여부에 따라 운행을 포기하던가, 추가 요금을 거래하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운행 시작 버튼을 누른 후에는 문제가 많이 복잡해 집니다. 때로, 악의적으로 출발 이후에 경유지를 통보하는 고객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경유지를 요청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내릴게요." 가는 길에 대한 입장이라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경유 요청 없이 올린 콜에 경유지를 추가하는 건 '계약'이 '변경'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지난달의 일이었는데, 23:00 정도에 서울 서교동에서 부천시 상동역으로 가는 콜을 30,000원에 잡았습니다. 그럼 제 실제 수입은 24,000원이겠죠. 출발지에 도착하니 3사람(남성2, 여성1)이 모여 있었습니다. 느낌이 쎄해서 경유가 있냐 물으니 없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상동역으로 다들 가시는 거죠?' 라고 물으니 그렇다 해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양화대교를 넘어서 경인고속도로 입구에 진입했는데, 가는 길에 한사람(남성)이 내려야 한답니다. 갑자기 X 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내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지요. 신월동이라고 했고, 그럼 가는 길에 내리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과학수사연구소 쪽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고객 입장에서는 가는 길일 수 있는데, 제 입장에서는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 과학수사연구소를 들어갔다가 다시 또 경인고속도로로 나와야 하는데, 못해도 20분은 더 걸리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일단, 차를 갓길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번 더 물어봤죠. '솔직히 말해 보세요. 상동역 가기 전에 또 어디에 들러야 하나요?' 라고 물으니 사실은 상동역(여성 내림)에 들렸다가 원종동에 가는 거랍니다. 뒤통수가 얼얼 하더라고요. 그래도 또 한숨 몰아쉬고 그럼 '왜 콜 목적지를 상동역으로 했나요?'라고 물으니 '대리 운전'을 첨 불러봐서 몰랐답니다.(말 같지도 않은 말이죠.)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난감해 집니다. 성질 같아서는 몇대 쥐어패고, 기분 같아서는 거기서 운행 취소하고 길 가에 버리고 가고 싶지만, 이미 온 길도 있고 저 역시 그런 상황에서는 운행 취소를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손님은 상동역에 호감을 느끼는 여성을 데려다 주고, 점수를 따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들이 선호하는 상동역을 목적지로 해서 호출을 하고, 출발 이후 운행이 꽤 진행된 후에 '경유'를 알린 거죠. 대충 봐도 '기망'이고, 엄밀히 보면 '사기'인 겁니다.
이런 경우 손님들은 하나 같이 같은 말을 합니다. '신월동 이면 중간에 1km 정도만 더 운행하시면 되잖아요.' , '우리집 상동역 근처에요. 정말 가까워요.'
2. 저는 '경유'가 싫습니다.
그래서 제 차가 '가솔린'을 이용...이 아니고, 실제로 저는 '경유 콜'은 일단 잡지 않습니다. 또한 운행 전 '경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콜 수락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야박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손님들이 생각하는 '가는 길'은 이동 경로나 소모되는 시간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대리 운전 기사들에게 '이동 경로'에서 벗어난다는 건 추가적인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경우라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이동 경로'를 벗어나는 '경유'는 '가는 길에 내려주는 일'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경유 콜'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경유지를 설정한 콜은 기사들이 잘 잡지 않고, 높은 단가를 제시해야 잡기 때문에 경유지를 설정하지 않고 '기사를 낚은 후'에 5,000원 정도의 추가 요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가끔, 추가요금을 현금으로 준다고 나름의 '딜'을 치는 손님들도 많은데, 헛웃음도 안나죠.
지금 까지 대리운전을 해 오면서, 운행 중간에 운행을 취소하고 차에서 내린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2년 전쯤 영등포에서 수원 인계동을 가는 콜을 45,000원에 잡았습니다. 4명의 손님이 탔는데 굳이 경로를 경부 고속도로로 해달라 했고, 분명히 '경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남역 쪽에 들러달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가는 길이니까 판교, 분당을 거쳐서 수원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노량진 쪽에서 올림픽대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수산시장 쪽 '노들길'에서 차를 세우고 3만원을 더 내면 운행을 해 준다고 했더니, 가는 길인데 무슨 추가 요금이냐고 해서 상황실에 연락해서 콜을 취소하고 그냥 놔두고 떠났습니다. 뒤에서 욕설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운행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3. 경유에 대처하는 대리 기사의 짜세.
위에 소개한 것과 같은 경험을 몇번 하고 난 후엔 '경유'라는 것에 대해 민감해 졌습니다.
30분 운행을 예상하고 콜을 잡았는데, 예정에 없던 경유가 생겨 30분을 더 운행하고 망극하게도 5,000원을 더 받은 일도 있습니다. 차라리 추가 요금 안 받고, '경유'가 없는 게 제일 좋지만, 손님들이 엄청 제 입장을 고려했다는 듯이 추가 요금을 지불해 주시는 것도 별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경유 콜'을 잡지 않거나 수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위에 소개한 사례 처럼 '경유'가 생길 때 대응하기 위한 몇가지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1. (내비에 설정된) 이동 경로를 벗어 나지 않는다면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다.
2. 경유지 1개소 추가 소요 시간 10분 기준으로 5,000원의 추가 요금을 받는다. (예 : 경유지가 2곳이고, 경유지 1곳이 10분, 1곳이 20분이라면 15,000원의 추가요금을 요구)
3. 추가 요금이 합의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안전한 장소에서 정차 후, 현재 시점까지의 요금을 정산하고 운행을 종료한다.
대리운전 기사들이 고객들과 겪는 갈등은 대부분 '경유'에서 발생합니다. 손님들이 호출한 정보대로 운행하는 '콜'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일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식당이 '별점테러'를 당하듯, 대리 기사들도 별점 테러를 당합니다.
저는 저에게 단점을 남겨 놓은 저 두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경유'에 민감한 이유는 '부업'으로서 대리운전을 하는 입장에서 심야에는 시간을 분단위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경우처럼 예상 외의 시간 소요가 10분만 생겨도 이후 이동이나 귀가에는 2-3시간의 영향을 끼칩니다. 수익에 끼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지요.
대리운전을 통해 '지인이나 썸녀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분'들에게는 차라리 '택시비를 주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유지를 설정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행위는 '기망'이고, '사기'에 준하는 행위임을 꼭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하시려는 분들 역시, 제가 겪었던, 앞으로도 겪어야 할 일들을 똑같이 겪게 되겠지만 최대한 원칙을 세워서 대응하시고 멘탈 챙기시면서 일 하셔야 한다는 조언 드려봅니다.
이제 또 '콜을 잡으러 나갈 시간' 입니다.
다음 글은 '진상 고객의 유형'입니다.
행쇼~